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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EBS 특강과 MBN특강때의 내용을 정리하여 적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특강을 다시 보고 있다는 느낌과 말로 할때는 느낄 수 없었던 정제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책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저자의 글은 모두가 다 질문이며 해답이다. 

Q1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해야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이 '우리'가 아닌 '나'로 존재하는 일이 인문학적 통찰력을 얻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역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적 상황이 내가 나로 존재하기가 힘든 세상이고, 내가 나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힘든 세상에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건, 촉이 좋은 사람이건 간에 나를 찾고 싶은 세월이 되었다는 것이다.


Q2. 문학적 통찰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나'의 '나'됨을 기반으로 '우리'속에 갇혀있는 '나'를 찾아내고

'나'에 집중하여, '행복한 나' 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다.  

점점 굳어 가면서 명사화되어 가는 자신을 율동감이 있는 동사로 되살리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바로 예술이 필요한 겁니다! 예술은 명사적으로 굳어진 나를 동사화하도록 자극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단계를 미학적 삶이랄지 예술적 경지랄지,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문적 통찰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요




Q3. 당신의 좋고 싫음(정치적 판단이라 규정)에서 벗어나 상황에 대한 음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어떤 이념을 따른다랄지 신념을 지킨다랄지 하는 것은 기준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기준을 가졌다는 것은 구분을 하겠다는 것이죠, 기준을 강하게 가지면서 구분을 하지 않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구분한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구분한 다음에는 반드시 선택을 하고, 선택을 한 다음에는 반드시 그 배제된 대상을 억압합니다. 이념이나 신념 혹은 가치관이 개인이나 사회에 대하여 폭력으로 행사될 수 있는 이유에요.


이 세계에는 이 세계가 움직이면서 그려내는 도도한 흐름과 방향이 있어요


그런데 조짐으로 읽힐 만한 어떤 현상을 보고 '좋다'라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하는 것은 문명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단절시켜 버리고 인식을 바로 거기에서 정지시켜 버립니다. 
인문적 판단을 하는 사람은 '좋다'거나 '나쁘다'라고 대답하지 않아요.


'대답'하지 않고 먼저 '질문'을 합니다.





Q4. 어떻게 살 것인가?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궁극적 질문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여러분도 금방 죽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닏. 죽음은 개념이에요. 구체적인 실재가 아닙니다. 그럼 이 세계에 구체적이고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냐? 바로'죽어가는 일'이 존재해요. 이세계에 진짜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건'입니다. 


인문학적 통찰은 뭐냐?


바로 '죽음'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있는 사람에게 '죽어가는 일'이 툭! 하고 경험되는 거에요.

개념을 봤는데, 사건이 느껴지는 거지요. 죽음이라는 명사가 갑자기 동사가 되어 자기에게 파고드는 사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명사로 굳어진 사람이 동사적 율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주체력을 회복하는 일이자 덕의 힘을 갖는 일입니다. 

여러분, 죽음에 매달리지 말고, 죽어가는 일을 응시하길 바랍니다. 


Q5.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멋대로 하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다. 無爲而無不爲

-도덕경37장-


개별적 존재들이 보편이라는 모자를 쓴 특정한 이념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로지 각자의 자발적 생명력에만 의지해서 약동하는 상태를 노자는 무위라고 표현합니다. 

삶을 영위하는 어떤 사람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랄지 '바람직한 일을 해야 한다'라는 당위의 굴레를 벗어나 아무런 기준이나 목적성의 제어를 받지 않고 하는 자발적 발휘, 그것이 바로 무의의 삶입니다. 


'남들이 2000억 부자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삶에서 보람된 일이 뭘까. 재산이 2조 원이 있으면 만족할까.그렇지 않다. 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하지 않았다. 90년대 힙합이 뿌리내리지 않았을 때도 지누션과 원타임을 만들었다. 당시 힙합은 돈이 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이어서 대중과 나누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즐겁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지 억지로 돈을 벌려고 앨범을 낸 적은 없다. 

-매일경제신문 2013년 1월 2일자 양현석(YG Entertainment)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즐거운일, 행복한 일.


"Because I like It."


아침 6시30분 부터 저녁 11시까지 일을 해도, 일년 365일을 매일 같이 일을 해도 즐겁다고 말하는 친구같이 행복한 그런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를 잘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말한 것 처럼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것, 우리속에 갇혀있는 나를 꺼내 

'우리'가 아니 ''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Q6. 노자의 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철학자 답게 저자는 노자의 사상으로도 답을 주고 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이는 추하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이는 좋지 않다. 

-도덕경 2장


그렇게 즐거운 행복한 개인,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어떤 것을 해야 즐거운지 아는 개인들이 모여서 만드는 사회가 건강하고 힘있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노자의 사상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단지 강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유연하고 여유를 잃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Q7. 그런데 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대답만 할 줄 알기 때문에 그래요. 또다시 말하면, 튼튼한 자기검열 시스템에 의해서 자기가 관리받고 있기 때문이에요. 바로 체계, 이념, 지식, 가치관, 신념등등 아니겠어요? 이러한 자기 검열 시스템에 의해 세계를 보면 인문적 더듬이는 성장할 수가 없죠. 인문적 통찰은 불가능해요.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자신이 고갈되는 길목에 서 있지 않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나를 바로알고, 하고 싶은 '욕망'을 찾아내어 그 것에 힘을 쏟으라 라고 한다. 

자기로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습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면 아름답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습니다. 

나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장르는 자기로부터 나온 이야기에서 흘러나옵니다. 


인문적 통찰의 힘은 자기를 잘 확인하고 집중하는 순간 흘러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가두는 우리입니다. 

우리 속에 갇혀 자신이 우리의 일부로 녹아들면 안됩니다. 


"오직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

그리고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한다.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들어오네"